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마누엘 칸트 (문단 편집) === 수요 모임의 계몽주의자 === 1783년 베를린에서 계몽을 위한 투쟁 단체인, 은밀한 "수요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생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그리고 독자적 사유와 시민정치적 자유를 향한 적극적인 참여, 더불어 이것들에 결합된 공공성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어두운 감정 철학, 비이성의 감옥, 종교적 독단, 교회의 강요, 광신과 미신 등에 대항했다. "그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규칙적으로 개인 주택에서 모임을 가졌고, 우정 어린 생각들을 교류하면서 서로서로 정신을 계몽했으며, 이를 통해 여러 종류의 개념 자체를 명확하게 규정했다. 이 모임의 결과는 『베를린 월간지』에 실렸는데, 칸트는 1796년까지 총 15편의 글을 기고했다.[* 같은 이름들이 1783년 결성된 "수요 모임", 즉 "계몽 친구들의 비밀 모임"의 회원 명부에서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규칙적으로 개인 주택에서 모임을 가졌고, 우정 어린 생각들을 교류하면서 서로서로 정신을 계몽했으며, 이를 통해 여러 종류의 개념 자체를 명확하게 규정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284)] [* 『베를린 월간지』는 전통적인 학자의 간행물이거나 대학의 간행지가 아니었다. 닫힌 문 뒤에서 개별적으로 토론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베를린 월간지』가 시민사회의 교양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잡지는 1783년 초에 요한 에리히 비스터와 프리드리히 게디케에 의해 창간되었고, 거의 모든 수요 모임의 회원이 집필진이 되었다. 이 잡지는 최고이자 최후의 단계에서 독일 계몽주의를 점유하고 있떤 가장 중요한 대중의 모임을 보여준다. (중략) 생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그리고 독자적 사유와 시민정치적 자유를 향한 적극적인 참여, 더불어 이것들에 결합된 공공성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들은 어두운 감정 철학, 비이성의 감옥, 종교적 독단, 교회의 강요, 광신과 미신 등에 대항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290)] 이러한 계획의 수립과 더불어 계몽의 동지들은 동시에 그들의 반대자에 대한 전선을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전선은 자신들의 감정에 지배받고 자신의 갈채를 신적인 계시로 간주하는 모든 종류의 광신자들을 향해 구축되었다. 이 광신자들은 모든 사유의 자유를 반대하는 자, 특히 문화ㆍ정치적인 반대자로 간주되어 논쟁적으로 반박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상 그들의 고유한 방식 때문에도 위협을 받고 있던 예수회와 비밀 구교를 향해서도 계몽 단체의 반박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토론과 강연 그리고 제한적으로 돌려보던 문서 등은 엄격하게 비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계획의 수립과 더불어 계몽의 동지들은 동시에 그들의 반대자에 대한 전선을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전선은 자신들의 감정에 지배받고 자신의 갈채를 신적인 계시로 간주하는 모든 종류의 광신자들을 향해 구축되었다. 이 광신자들은 모든 사유의 자유를 반대하는 자, 특히 문화ㆍ정치적인 반대자로 간주되어 논쟁적으로 반박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상 그들의 고유한 방식 때문에도 위협을 받고 있던 예수회와 비밀 구교를 향해서도 계몽 단체의 반박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토론과 강연 그리고 제한적으로 돌려보던 문서 등은 엄격하게 비밀로 유지되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김광명 옮김, 미다스북스, 2004, p.285)] 『베를린 월간지』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토론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통적인 교회결혼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었다. 교회에서 치르는 혼례성사는 번잡한 허례허식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결혼은 신성하므로 교회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풍기문란과 도덕적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똑같이 '계몽'의 이름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에 쵤너는 '계몽'의 이름으로 야기되는 혼란을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계몽에 대한 분명한 개념 규정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계몽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이 문제에 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쵤너의 물음에 대해 칸트는 몇 개월 뒤 이렇게 응수했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다른 사람이 지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러한 미성숙이 지성의 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서는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가 없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좌우명이다."[* Aufklärung ist der Ausgang des Menschen aus seiner selbst verschuldeten Unmündigkeit. Unmündigkeit ist das Unvermögen, sich seines Verstandes ohne Leitung eines anderen zu bedienen. Selbstverschuldet ist diese Unmündigkeit, wenn die Ursache derselben nicht am Mangel des Verstandes, sondern der Entschließung und des Mutes liegt, sich seiner ohne Leitung eines andern zu bedienen. Sapere aude! Habe Mut, dich deines eigenen Verstandes zu bedienen! ist also der Wahlspruch der Aufklärung.] 즉,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지고 "언제나 스스로 생각한다는 원칙이 계몽이다."[* und die Maxime, jederzeit selbst zu denken, ist die Aufklärung. (Immanuel Kant: ''Was heißt sich im Denken orientieren?'' In: Kant Werke.)]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사람들에게 공론장에서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독서계의 모든 공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학자의 입장으로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장교가 직무수행 중에 상관의 명령의 합당함이나 유익함에 관해 공공연히 따지려 든다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지만 학자의 입장에서 병역 의무의 결함에 대해 논평하고 독자층에게 판단을 호소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금지되어선 안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상관의 명령을 받는 장교가 직무수행 중에 그 명령의 합당함이나 유익함에 관해 공공연히 따지려 든다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지만 학자의 입장에서 병역 의무의 결함에 대해 논평하고 독자층에게 판단을 호소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금지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 외 『계몽이란 무엇인가』 임홍배 옮김, 길, 2020, p.32)] 여기서 칸트는 심지어 종교나 군주라도 공론장에서의 사상의 자유만큼은 억제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